대전시립교향악단 서울연주회를 다녀와서

정신없이 흘러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모처럼만에 찾은 대전시향의 서울연주회. 이런 규모의 연주회는 보통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데 이번엔 이례적(?)으로 새로 개장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니 호기심이 컸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보니 이미 여러 명의 음악애호가들이 롯데콘서트홀 주변 멋진 야경을 감상하며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고 있더군요.

  첫 곡인 우미현님의 ‘빛의 유희’는 기존의 고전음악 이론과는 다른 관점으로 음악을 듣고 감상해야 될 것 같은 만만치 않은 곡이었습니다. 화성에 얽매이지 않고, 개개의 악기들 음색과 다양한 표현 방식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이를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그려보려는 시도는 개인적으로 아직은 좀 힘들었어요. 그래도 미술에서 비구상화가 있듯 음악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좀 더 또렷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두 번째 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은 워낙 유명한 곡인데, 부끄럽지만 실제 연주회에서 직접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동안 CD나 유튜브로는 자주 들었지만, 이번에 바로 눈앞에서 들으니 정말 실감나더군요. 지휘자 제임스 저드님의 안정된 리드아래 차분하게 시작된 1악장은 가을 분위기와 잘 어울렸습니다.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볼로딘님은 큰 키에 걸맞게 힘 있는 연주로 시작했습니다. 거침없이 노래하는 손가락을 보니 제 마음도 시원해지더군요. 이전에 들었던 여성 연주자의 라흐마니노프와는 또 다른 느낌의 연주였습니다. 하지만 섬세한 부분에서는 시적인 느낌을 주는 차분한 터치로 반전의 묘미를 주었습니다.

2악장은 초반부 관악기와 피아노의 어울림으로 시작하여 사색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네요. 번잡한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서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가슴 뭉클하고 아련한 느낌이었습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을 담담하게 뒷받침해주는 관현악의 배려심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오늘따라 2악장이 유난히 짧게 느껴져서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3악장은 경쾌하게 시작되어 관현악과 피아노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빠르고 수다스럽고 친근하게 주고받는 대화가 이어지고, 1악장에서 제시되었던 주제가 한층 더 성숙해가는 그림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빠르게 달려가다가도 어느 순간, 잠깐 걸음을 늦추며 생각에 잠긴 듯한 잔잔한 피아노 선율, 그리고 뒤따라오는 서정성 짙은 주제부 협주는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조화를 추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네요. 오디오로 들어서는 느낄 수 없는, 현장의 생생함과 피아니스트 볼로딘의 강렬한 아우라가 빛을 발한, 기억에 남는 멋진 연주였습니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 1악장은 대체로 무겁고 장중한 분위기로 시작해서 무도회 춤곡을 연상케 했습니다. 2악장의 전원적 분위기의 관악 연주가 인상적이었고, 3악장은 특히 오랫동안 지속되는 현악기의 피치카토 연주가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4악장은 1악장과 닮은 듯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상당히 긴 시간동안의 연주였는데 시종일관 몰입해서 연주하시는 단원들의 모습을 통해 차이콥스키에 대한 진한 열정이 전해졌습니다.

대전 출신으로서 대전시립교향악단에 대한 자부심과 뿌듯함이 충만했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