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데미트, 카를 마리아 폰 베버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

레전드의 귀환은 이미 예고된 연주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기다린 연주회였습니다. 연주전에 피아니스트 한동일 선생님에 대한 자막이 자세히 소개됩니다. 감동적인 피아니스트 인생을 요약해서 보여준 것도 뜻깊고 좋았습니다.

첫 곡 힌데미트. 연주 전 클라라 홀에서 프리뷰를 통해 힌데미트 곡에 대한 자세히 소개를 받아 곡의 이해와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베버의 곡을 하나하나 들려주면서 힌데미트 곡에서 어떻게 변용되는지를 알려주어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낯선 곡이 주는 생소함과 함께 그 속에 담긴 신선함을 첫 시작부터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악기가 골고루 적당한 음으로 표현한다는 느낌입니다. 금관악기의 음색이 반짝반짝 빛나고 탬버린과 스네어 드럼의 울림, 오보에와 목관악기의 발랄함, 맑게 울리는 트라이앵글, 새소리 같은 피콜로 소리. 그 모든 것을 감싸는 현악기의 매끄러움. 실로폰의 맑은 쇳소리도 아름답습니다. 2악장은 시작과 함께 고요한 객석은 종소리와 플루트 소리로 신비로움에 휩싸입니다. 스케르초 악장답게 쾌활하면서 다채로운 다양한 음색이 각각의 악기로 어우러집니다. 트럼본이 주연을 맡아 뿜어대는 소리가 아니라 표현하기 힘든 음들을 오르내리며 드러냅니다. 지난 몇 번의 연주회에서부터 보았던 트럼본 연주자 말레나 스카질레스 씨의 연주가 돋보입니다. 볼레로처럼 점점 상승하는 각 악기들의 울렁거림이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재즈 풍으로 바뀐 트럼본 소리는 탭댄스라도 출 것 같은 신남이 있습니다. 목관파트도 그 재즈 풍을 받아 신나게 붑니다. 종소리가 점점 크게 울리며 저음현악기와 클라리넷이 함께 낮게 깔리고 모든 파트가 최고조로 터뜨리며 가슴 뛰게 만드네요.

3악장은 클라리넷이 주도합니다. 그 선율을 바순이 받아 연주합니다. 저녁노을 같은 바순 소리에 보랏빛 구름이 깔리듯 클라리넷 소리는 채색됩니다. 문득 발견한 아름다운 저녁 하늘을 바라보듯 고요해진 마을로 스며드는 저녁 빛 같습니다. 바순과 연주하는 플루트의 현란한 음들. 낮게 깔리는 현악기 소리는 고요한 아름다움입니다. 4악장 행진곡. 금관악기가 힘차게 뿜고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행진하다가 점점 행진은 힘찬 발걸음이 됩니다. 장거리 트랙을 타는 스케이트 선수처럼 바이올린 활은 쭉쭉 힘차게 켜고 타악기는 터뜨리고 작은북의 트레몰로와 트라이앵글이 따르릉 울리며 교향악단은 망설이거나 주저함 없이 딴딴 따다다단 깔끔하게 끝을 맺습니다. 아마도 힌데미트 곡은 오늘 지휘하신 수석객원지휘자 마티아스 바메르트 님이 선곡하신거겠죠? 연주 시작부터 감동이네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1번 다장조, 작품 467(피아노 한동일)

연주 전 영상으로 만난 한동일 선생님은 세월이 흘렀어도 본래의 웃음기 가득한 다정한 얼굴이 그대로이십니다. 78세 피아니스트는 고향 땅 함흥에 대한 이야기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고국에 대한 향수를 고스란히 전해줍니다. 관객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환영의 박수를 보냅니다.

1악장은 모차르트 특유의 맑고 경쾌함이 객석으로 시원한 바람처럼 전해지네요. 피아노를 부르는 긴 서주는 잘 깍은 대리석 조각처럼 매끄럽습니다. 드디어 피아노가 첫 음을 연주합니다. 이건! 할아버지의 연주가 아닌데요? 60여 년 간의 피아노 인생과 고국으로 돌아온 감회가 느껴집니다. 피아노 소리의 맑음, 리듬의 경쾌함, 때로는 처연한 음색이 한동일 선생님의 연주에 담겨있습니다. 아~ 세월은 흘렀어도 그 연주의 빛깔은 변하지 않았다니 참 놀랍고도 고마운 일입니다. 얼마나 많이 연주했을 곡일까요. 매번 연주 때마다 아름다운 연주에 대한 갈망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겠지요. 1700년대 신동의 음악은 1900년대 한국의 신동의 음악으로 이어졌고 긴 연주 여정을 지나 오늘 이 자리에 감회를 느끼게 하는 연주를 들려줍니다. 객석은 그 소리에 숨죽이고 감격합니다. 모차르트 음악의 위대함에 평생 피아노에 바친 한동일 선생님의 인생이 얹히면서 숭고함을 느끼게 합니다. 대단하십니다. 멋지시네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피아노로 보여주시는 연륜, 연주로 들려주시는 덕담 같습니다. 어쩌면 모차르트는 사라지고 베토벤의 엄숙함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2악장. 한 음악이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음악으로서도 축복입니다. 영화 속 영상과 어울리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는 그 선율.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엘비라 마디간과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 명곡에 명화입니다. 모차르트는 어떻게 이런 천상의 멜로디를 작곡했을까요. 들을 때마다 감탄하며 황홀해합니다. 오직 음악의 아름다움만이 있는 순간. 평화로운 순간입니다. 연주하는 게 아니라 그냥 흘러나오는 것 같네요. 시향의 연주도 함께 어우러지며 하늘에 별을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 음들은 화려하게 빛납니다.

3악장. 종달새의 발걸음처럼 날래고 경쾌한 음들은 피아노 건반 위에서 빠름과 함께 생기발랄합니다. 그 나이에 혹시나 하는 걱정은 어리석은 걱정이었네요. 트레몰로로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건반. 연주는 분명하며 안정적이고 깔끔하네요. 감동하며 연주를 보고 듣습니다.

감사의 박수, 감격의 박수, 존경의 박수 소리가 아트홀을 가득 채웁니다. 몇 번의 감사 인사. 지휘자님과 손잡고 인사하는 모습이 꼭 형제 같습니다. 앙코르 곡은 슈베르트 즉흥곡 3번. 정말 잘 어울리는 선곡입니다. 박수 밖에 보내드린 게 없는데 이런 아름다운 곡으로 화답해 주시다니 또다시 감동입니다. 피아노 연주와 전석 매진된 객석이 이렇게 하나가 되는 것도 흔치않은 광경입니다. 오직 음악만이, 음악만으로 하나 되는 이 놀랍고 아름다운 순간을 한동일 선생님이 만드셨네요.

“한동일 선생님 브라보! 대전시향 브라보!”

레전드의 귀국 독주회로 이어집니다. 바흐 전주곡 실로티(siloti). 뚜벅 뚜벅 걸어온 피아노 인생을 표현한 것 같은 곡이 두 번째 앙코르 곡으로 연주됩니다. 다시 한 번 객석을 휘어잡는 피아노 소리. 화려한 기교의 피아노 연주가 아닌 고요하게 마음의 웅덩이에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같은 한 음 한 음의 피아노 소리를 마음으로 깊이 듣습니다. 오직 피아노만 있는 피아노에게 주목된 순간. 피아노 음은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그렇게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