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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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음악
Name tapdongi
Date 2020-10-26 16시35분
팻 슈나이더의 시 [평범한 사물의 인내심]을 천천히 쓰며 마음으로 읽어봅니다.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바닥이 신발 바닥을/혹은 발가락들을 받아들이는 일”은 사랑이라고 시인은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옷들이 공손하게 옷장 안에서 기다리는 일/비누가 접시 위에서 조용히 말라가는 일/수건이 등의 피부에서 물기를 빨아들이는 일/계단의 사랑스러운 반복/그리고 창문보다/너그러운 것이 어디있는가?”라고 묻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우리들을 지켜보는 평범한 사물들의 눈빛을 새삼 느낍니다.

세계가 앓고 있는 전염병으로 모두 입을 가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긴장한 눈으로 주변을 응시합니다. “확진자”라는 소리에 기겁하며 놀랍니다. 움츠러든 어깨는 점점 더 작아져 맘 놓고 숨을 쉬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긴장 속에 살아갑니다. 아무리 견뎌보려고 해도 내 눈으로, 내 귀로, 온몸으로 듣던 연주회의 감동을 느낄 수 없게 되니 금단현상처럼 마음이 불안하고 무기력해집니다. “서로 가까이도 말며/말하지도 말라며/신은 인간에게 채찍 대신 마스크를 나눠주었다/사랑하지 말라는 의미였을까/입을 가만히 두라는 의미였을까// 소리를 들리게 하지도 말라며/소리를 내지도 말라며/사람들을 향해 사람들은 두 번째 손가락을 세웠다//” 이병률, [숨] 중에서

“신이 인간의 입을 막았다.”
들으며 감동하고 환호하고 박수치던 그 소리들, 아트홀을 가득 채우던 그 화려한 소리들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먹지 못해 배고프고 지친 것처럼 듣지 못해 시들은 마음을 오케스트라 선율로 생기를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기쁜 일은 말할 데가 많은데 슬픈 일은 터놓을 데가 마땅치 않다고 하는데 코로나 속 연주회는 기쁜 일이면서 슬픈 일입니다. 이제는 마냥 좋아서 박수치며 듣는 연주회가 아니라 감동을 억누르고 깊이 숨을 참듯 감동을 차곡차곡 쌓아놓아야 합니다.

한 칸씩 띄워 앉은 객석이 꽉 찼네요. 음악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본인 인증을 하고 손 소독을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얼마 만에 앉아보는 연주회장인가요. 연주 전의 튜닝 소리조차 반갑습니다. 공연 전 안내방송도 차갑고 엄격하게 들립니다. 관악기 앞에는 투명한 판이 설치 되었고 다른 단원들은 마스크를 썼네요. 곧이어 검은 마스크를 하고 저드 님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제1번, 작품 46

1. 아침. 음악처럼 맑은 아침이 절실하네요. 플루트와 오보에 소리는 새소리처럼 맑고 밝습니다. 익숙한 음악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이며 감격스러운 음악입니다.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도 참 반갑네요. 아침 안개처럼 호른 소리는 은은하고 부드러우며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목관악기 소리도 몽글몽글 울립니다. 2. 오제의 죽음. 장송곡 멜로디는 이 시대의 슬픔과 비극을 어루만지는 듯 낮고 길게 울리고, 천천히 무겁게 걷는 걸음처럼 음악 소리는 무겁습니다. 죽음은 이렇듯 애절하고 슬픈 것이겠지요. 숨 죽이고 음악을 듣습니다. 3. 아니트라의 춤. 트라이앵글의 맑은 소리와 피치카토. 울림과 퉁김. 켜는 소리가 슬픈 춤곡으로 보입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연인들]을 보는 것 같은 슬픔입니다. 4. 산왕의 궁전에서. 첼로와 바순 소리. 더블베이스의 피치카토. 바이올린의 높고 빠른 피치카토가 타악기를 부르고 함께 터지고 두드리고 켜면서 휘몰아치는 절정에서 곡은 끝났습니다. 암묵적으로 금지된 함성과 자제하며 치는 박수 소리.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작품 16

그리그가 25세 때 완성하고 26세 때 초연했고 하는데 오늘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문지영 씨가 27살이니 시공을 넘어서 젊음이 만든 곡을 젊음이 연주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곡의 첫 부분. 기대하며 듣고 싶던 그 소리를 첫 음으로 채워줍니다. 분명하고 명확한 소리들이 곡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해줍니다. 28살의 젊은이 손흥민 선수는 순간의 빈틈을 치고 들어가 골을 넣고, 27살 피아니스트는 정확한 타건으로 음을 압도합니다. 젊다고 다 잘하는 게 아니니 그 실력이 대단하기만 합니다. 한번 들으면 매료될 수밖에 없는 연주입니다. 젊음의 패기가 아니라 절제된 노련함으로 피아노 건반을 열 손가락으로 오르내리며 자유자재로 연주합니다. 세상의 잘하는 모든 것은 자연스럽고 매끄러우며 거침이 없습니다. 꼭 맞는 옷을 입은 맵시처럼 곡은 문지영 피아니스트와 잘 어울립니다. 오케스트라와 주고 받는 일치감. 카덴자의 숨막힘. 저 화려하고 거침 없는 기교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실체인 소리를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 천둥과 솟아오르는 파도를 다 불러들입니다. 잔잔한 파도와 부서지는 흰 물살을 건반으로 그려냅니다. 2악장 아다지오. 이미 연주로 예감되는 2악장의 아름다움을 오케스트라가 닦고 엽니다. 피아노의 첫음 하나만으로 전율합니다. 그리그가 창조한 아름다움의 세계에 조용히 발을 내딛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 탄식이 터집니다.행복한 한숨이 저절로 터집니다. 느림은 아름다움으로 숨을 꼭 참고 못 쉬게 만듭니다.
“얼마나 힘들었어.” “고생 많았어.” 위로의 말들을 속삭입니다. “괜찮아. 잘 될거야.” 힘내라고 쓰다듬어줍니다. 우리는 각자의 슬픔을 음악의 제단에 쏟아놓습니다.
3악장. 힘찬 연주. 슬픔을 이겨낸 외침처럼 빠르게 연주되는 속도에 올라타고 같이 뛰어갑니다. 높게, 빠르게, 크게 퍼지는 소리들. 그 음들을 뚫고 피아노는 솟아오르고 마구 달립니다. 그리고 잠깐의 숨 고르기. 턱까지 차오른 감격의 호흡을 피아노는 첼로 저음과 함께 풀어줍니다. 참 연주를 잘하네요. 모두가 공감할 연주의 실체를 지금 보고 듣고 있습니다. 마지막을 향해 피아노가 다시 달립니다. 오케스트라도 그동안 참아왔던 연주를 마음껏 쏟아냅니다. 피아노는 자신만만하게 그 소리들을 드러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며 쓰며 감상하고 긴 호흡을 한 번도 놓지 않는 연주를 오랜만에 느낍니다. 이 맛, 이 기분, 코로나가 막을 수 없는 음악의 희열을 오랜만에 느낍니다.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차이콥스키 사계 중 [10월]. 곡은 또 한 번 슬픔을 위로해줍니다. 눈물이 납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어루만짐에 그저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쓰는 것은 그저 음악에 젖어 헤어나올 수 없는 어쩌지 못하는 그 감격을 겨우 붙잡아 놓은 아쉬운 탄식일 뿐입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5번 내림마장조, 작품 82

호른과 목관악기로 시작되는 파스텔 톤 같고 여린 수채화 같은 음들이 봄날의 꽃처럼 은은하고 예쁘네요. 트럼펫도 조심조심 소리를 뽑아내고 모든 악기들이 재잘거리며 무언가를 담은 것 같은 긴장감을 보입니다. 음들이 일제히 높게 끓어오릅니다. 궁금함? 호기심? 그런 느낌이 드는 연주가 조심스럽게 계속 이어집니다. 바순 솔로. 현악기가 매끄럽고 자신있게 연주합니다. 금관악기가 크게 솟구치며 본래의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1악장 주선율은 계속 이어지며 변주되고 선언하듯 트럼펫이 튀어나오고 아직 뭔지 모를 스산함이 계속되며 흔들립니다. 악기들의 소리로 감지한 순간 순간의 느낌을 잡아보려고 합니다. 점점 빨라지고 커지며 1악장은 웅장해집니다. 참았던 말을 쏟아내듯 후련하게 터지며 1악장은 끝이납니다.
2악장. 피차카토. 목관악기의 긴 호흡에 첼로 바이올린이 피치카토로 주고받습니다. 켜던 현은 퉁김으로 새로운 소리를 들려줍니다. 목관악기의 높고 긴소리와 현악기의 매끄러운 선율이 조화를 이룹니다. 신선하고 다채로운 느낌. 맑고 선명한 현악기 소리가 아름답습니다. 낯선 사람과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듯 시벨리우스 교향곡을 탐색합니다. 표정으로 몸짓으로 곡을 탐지합니다. 새롭게 알아가는 느낌. 친해지려고 애쓰며 듣습니다. 다 보여주지 않아 모르는 속내를 나만의 느낌으로 생각합니다.
3악장. 매우 빠르게. 이러다가 금방 끝나겠네요. 뒤따라가기도 벅찬 빠르기. 충분히 알아보지 못하고 한 두 번의 대화로 감지한 성격을 알 수 없네요. 호른이 길을 닦고 현악기가 받치며 목관악기가 맑게 얹힙니다. 점점 커지고 부풀어오르는 소리들. 많이 들어 익숙한 곡은 미리 그 소리와 리듬, 선율을 예감하며 듣는데 그럴 수 없는 낯섦이 신기합니다. 시벨리우스는 바이올린 협주곡만 익숙해서 다른 교향곡도 들어보지 못해서 그 경향이나 느낌을 알 수 없고 그냥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합니다. 뭔가 낮고 깊고 풍부한 소리의 덩어리가 저녁 무렵의 붉은 웅장함 같습니다. 여섯 번의 단정적 피날레.
[답변] 마음을 치유하는 음악
Name 교향악단 Date 2020-10-27 15시16분


tapdongi님 멋진 후기 감사드립니다.


적어주신 생생한 후기를 통해 저도 그 날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조심스러운 시기인만큼 더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다가오는 '스트라빈스키 불새'와 다음 공연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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