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교향곡 제2번 라장조, 작품 73

휴식 후 하나 둘 무대로 들어오는 연주자들. 저마다 악기를 들고 들어오는 모습이 오늘따라 더 멋지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팜플렛에 쓰인 오늘 연주 주제 “베토벤, 그리고 그의 그림자”는 브람스겠지요. 브람스를 듣는 기분은 늘 듬직합니다. 말없는 맏아들처럼 묵묵한 그 의젓함과 뭔가 감춰진 슬픔이 매력입니다. 첫소리 호른을 기대합니다. 소리에 따라 지휘도 낮아지고 조심스럽게 여는 1악장. 1바이올린의 깨끗한 소리와 전체로 퍼진 소리들이 2바이올린과 합해지고 브람스 특유의 선율이 둥실둥실 떠오르면 저절로 따라 부르게됩니다. 맨 뒤에 펼쳐 선 콘트라베이스가 둥둥 현을 퉁기고 브람스만의 음악이 객석으로 흘러나옵니다. 음악을 글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요.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담아두고 싶고 기억하고 싶어 느낌을 적습니다. 때로는 고요하고 망설이듯 조심스럽게 다가오다가도 막상 만나면 감춰둔 거대한 음향을 불쑥 내밀기도 하고 넓은 품으로 감싸 안듯 포근한 인상을 보이다가도 휘몰아치고 밀어붙이는 뚝심도 보이는 브람스. 정신을 쏙 빼놓는 빠르기와 리듬에 몸도 휩쓸려 음의 소용돌이에 빠져듭니다. 아~ 이 브람스 특유의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냥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힘차고 정열적인 저드 님의 지휘에 오케스트라는 그대로 반응하고 잘 배합된 색깔처럼 아름답습니다. 1악장 좋네요. 베를린 필의 연주 음반을 차에서 계속 듣고 다녔는데 시향의 브람스도 좋은 연주입니다. 잘 세공하고 제련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날이 선 끝의 예리함이 느껴집니다.

저음현악기가 미끄러지듯 2악장 선율을 뽑아냅니다. 활과 현이 만나 울림통을 울리며 나오는 저 소리들. 믿음직하고 든든한 소리. 호른은 혼자 우뚝 서고 목관악기가 받쳐줍니다. 2바이올린에서 1바이올린으로 점점 높아지고 맑게 퍼지는 소리의 울림. 느리지만 지나치지 않는 2악장의 경지를 지속하기 위해 모든 악기는 애씁니다. 지나친 느림은 느림의 의미를 해치니 그 적당한 느림을 고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3악장 조금 빠르고 우아하게. 3악장의 주연은 오보에입니다. 바이올린이 빠르기를 주도합니다. 화려하고 우아한 빠르기의 바이올린 선율 위로 오보에는 빛납니다. 4악장 빠르고 힘차게. 진지함 후의 격렬한 빠르기와 힘찬 터짐. 목적이 분명한 빠름은 힘이 있습니다. 저드 님은 왼팔을 빙빙 돌리고 오른 손에 든 지휘봉은 그때그때 정확하게 찌릅니다. 두 손이 함께 낮아지면 저음으로 고요하게 긴장하고 감싸안고 높이 쳐들면 그만큼 소리는 솟구칩니다. 공중을 휘젓기도 하고 한 파트를 집중적으로 지휘하기도 하며 음을 끌어내기도 하고 다스리기도 하고 멈춰 세우기도 하며 우리 모두가 가고자하는 끝을 향해 갑니다. 끝을 향해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눈빛, 몸짓, 끝을 알기에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조급해집니다. 그렇게 참아온 마음을 다 쏟아내듯 피날레는 굉장하고 시원합니다. 손을 높이 들고 치는 박수. 브라보 외침. 박수 받아 마땅한 호른.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일으켜 세워 격려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는 커집니다. 좋은 연주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후련하네요. 팔 벌려 안아주며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잘 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