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들은 괴로움”

말러 9번 교향곡을 못 들은 괴로움과 아쉬움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신년 음악회가 끝나고 일 년 연주 목록이 나오고 기대하고 기다리던 말러 연주. 미리 듣기를 수십 번. 차에서 자기 전에 음반으로 영상으로 듣고 기대하던 연주를 갑자기 일이 생겨 갈 수 없게 되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던 중 같은 마음으로 연주를 듣는 지인에게 대신 말러 연주를 갈 수 있냐고 했더니 너무나도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서 대신 듣고 꼭 연주 후 느낌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대신들은 공연 후기를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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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봄이 말러와 함께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한겨울의 추위에도 3월 말러교향곡 9번의 대전 초연을 기다리며 지냈습니다. 마침 독일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딸이 와서 함께 연주를 들을 수 있어 더욱 설레며 기다린 연주회였습니다. 최정원님의 통역으로 지휘자 저드님의 말러 9번에 대한 깊은 애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러를 듣기 위해 세대를 거슬러간 바흐의 품격있는 선율을 듣게 되다니, 9번의 의미를 숙고하기 위해 바흐로 정화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의미도 전달이 되었습니다.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현악기와 하프시코드의 연주, 김필균 악장의 협주로 바흐의 쾨텐 궁정 시절의 의욕과 창의력의 산물이었던 이 곡이 어떻게 연주될까 기대되었습니다. 김필균 악장의 탄탄하고 섬세한 바이올린은 역시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협주자들과의 조화는 조금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바흐 음악의 딱 맞아 떨어지는 일체감은 조금만의 어긋남이 있어도 깔끔하지 않은 느낌을 받게되니 말입니다. 쾨텐 궁정의 화려함과 바이마르에서보다 더욱 왕성했던 그 시절의 영감을 전달하는지는 못한 것 같아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말러는 달랐습니다. 말러의 죽음에 대한 예견과 두려움. 9번 교향곡들의 저주를 말러도 역시 감지한 듯 어떤 블랙홀로 빨려버릴 듯이 연주를 전개했습니다. 1악장과 3악장이 다른 교향곡과의 차별화된 형식도 곡을 통해 확인해보는 묘미도 있었습니다. 안정과 불안정 사이. 마치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장엄하며 상징적인 죽음과 인간의 숙명에 대한 회화같은 선율에 빠져들어갑니다. 말러의 의도대로 차임벨을 설치하여 원음을 연주하고 숨막히는 말러의 이야기가 전개됨이 그대로 반사되어 전달됩니다. 2악장의 렌틀러풍의 연주는 춤곡을 이탈한 듯한 여정의 연주로 거친 듯이 술렁이다가 역시 주목하게 되는 피콜로의 짧은 울림으로 깔끔하게 악장을 끝냈습니다. 3악장은 여러 가지가 복합된 듯 불협화음화된 론도일까, 말러 대위 기술의 최고 변환을 보여주는 듯 현란한 출현과 분위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 4악장. 응축된 슬픔과 수용은 하늘의 별들이 쏟아지듯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넘나들며 결국 침묵의 5악장으로 넓은 호수에 물비늘이 일다 소멸해가듯 끝내지 않을 생을 받아들이는 슬픔의 정수로 마감합니다. 우주가 정지된 듯 지휘자 저드님의 몸짓이 멈춘 그 순간 연주회장 안의 모든 공기마저도 정지한 시공간의 일체감. 그 사이로 무언의 선율은 흐르고. 아마 듣던 많은 청중들의 눈망울엔 슬픔과 감동이 맺혔을 겁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어느 분들의 성급한 박수로 침묵의 장이 좀 더 지속되기를 바랐는데 지휘자의 손이 모두 내려가고도 계속되기를 바랐던 그 침묵의 악장이 깨져버려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웠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모든 자막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여운을 즐기듯 그렇게 몰입하고 싶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던 비가 말러의 밤을 데코레이션하고 안개라는 꽃까지 선물로 받고 돌아오는 길에 딸과 함께 바라본 눈동자엔 슬픔과 처연한 감동의 이슬이 맺혀있었습니다.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신 지휘자님과 대전시향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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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하듯 다녀온 공연의 느낌을 귀 기울여 전해 들었습니다. 아쉽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속으로 그리던 말러를 그렇게나마 들으며 위안을 받았습니다. 음악은 이렇게 듣는 사람을 감동하게 하고 깊이깊이 스며들게 합니다.

 

나이 이미 칠십을 넘었고

지위 또한 정승에 올랐네.

이제는 시 짓는 일 벗을 만하건만

어찌해서 그만두지 못하는가.

아침에 귀뚜라미처럼 읊조리고

저녁엔 올빼미인 양 노래하네.

어찌할 수 없는 시마(詩魔)란 놈

아침저녁으로 몰래 따라다니며

한 번 붙으면 잠시도 놓아주지 않아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네.

날이면 날마다 심간(心肝)을 깎아 내

몇 편의 시를 쥐어 짜내니

기름기와 진액은 다 빠지고

살도 또한 남아있지 않다오.

뼈만 남아 괴롭게 읊조리니

이 모양 참으로 우습건만

깜짝 놀랄 만한 시를 지어서

천 년 뒤에 남길 것도 없다네.

손바닥 부비며 혼자 크게 웃다가

웃음 그치고는 다시 읊조려 본다.

살고 죽는 것이 여기에 달렸으니

이 병은 의원도 고치기 어려워라.

 

이규보 선생의 한시 [시벽(詩癖)]을 읽으며 말러가 앓던 음악의 벽(癖)과 음악을 듣는 우리의 음악 듣기의 벽(癖)을 새삼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