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가, 원래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수수께끼”, 작품 36

팜플릿에 해설이 자세히 소개되어있고 또 공연 전 클라라 홀에서 사전 곡 해설을 들어 각각의 인물들과 에피소드를 생각하며 음악으로 표현된 다양한 모습들을 상상해봅니다. 변주가 대부분 짧게 끊김 없이 이어지는데 각각의 변주마다 무대 양 옆에 프로젝트로 제시해주니 곡을 듣기 좋았습니다. 리게티의 음악을 연주할 때는 무언가 잡히지 않는 형태를 표현하더니 엘가의 음악을 연주할 때는 인물의 표정, 성격, 걸음걸이도 보이듯 연주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변주가 주는 음악의 묘미를 가까이에서 느끼는 깜짝 선물에 또 감동합니다. 화면의 슬라이드가 넘어가듯 한 명 한 명이 등장했다 사라지면서 계속 이어집니다.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 지으며 듣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설명할 때 그 사람의 표정 몸짓 말소리를 흉내 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엘가가 아내에게 처음 이 곡을 만들고 이야기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아내 캐롤라인 엘리스는 엘가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고 합니다. 원래는 엘가의 제자였는데 29세였던 1886년에 자신보다 9년 연상인 엘리스를 제자로 받아들였다가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엘가는 가난한 평민이었고 엘리스는 귀족의 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엘리스 집안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1889년 5월 결혼합니다. 그래서였는지 엘가의 아내 사랑은 대단히 지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작곡했던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품 <사랑의 인사>가 바로 아내를 생각하며 쓴 곡으로 유명합니다. 천둥소리와 폭우도 음악은 묘사합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나고 새들은 지저귑니다. 너무나 유명한 님로드 선율. 음악에는 그가 가장 의지하고 위로받던 친구에게 바치는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이런 진심어린 마음의 선물을 받은 그 사람은 참 행복했을 겁니다. 도라벨라. 말을 더듬는 그녀를 깜찍하게 목관악기가 표현합니다. 밉지 않은 성대모사 같아서 모두들 그래. 맞아! 딱 맞네! 하며 인정할 것 같은 그런 재치 있는 포착입니다. 개가 헤엄치는 모습을 짧고 빠르게 표현하기도 하고 첼로 독주로 첼리스트 바실 조지 네빈슨을 표현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꼭 들어맞는 인상이었을 겁니다. 첼로 소리와 현악기 소리는 오늘도 여전히 변함없이 아름답군요. 맑은 여름날 가슴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습니다. ***로 표시된 수수께끼 속의 수수께끼. 작곡자인 엘가만이 알고 있을 비밀의 음악. 비밀은 밝혀지지 않아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래서 신비롭습니다. 어느새 마지막 연주네요. 자신을 표현한 마지막 변주. 웅장하고 화려하며 힘차고 당당한 음악으로 엘가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싶었을 겁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을 보는 것처럼 음악가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연주는 그렇게 또 끝났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과 지휘자 저드 님이 준비한 깜짝 선물을 받고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고마워하며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리게티의 음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을 때의 놀랍고 기쁜 깜짝 선물이고 드보르작 첼로협주곡은 예상했던 선물이지만 값지고 고급스러운 선물을 받아 깜짝 놀란 황홀함이며 엘가의 음악은 포장을 열을 때마다 새로운 선물들이 숨겨져 있어 뜯어보고 열어보는 즐거움을 주는 깜짝 선물입니다.

매번 연주 때마다 이렇게 감동을 주니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마음은 흐뭇한 조급함입니다. 말러를 기다리는 마음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설레고 분주합니다. 벚꽃처럼 터질 말러의 음악은 차창을 열고 봄바람을 느낄 때 쯤 듣게 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