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첫 마음] 정채봉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 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2017년이 가고 2018년이 찾아왔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은 늘 새로운 희망으로 벅차오릅니다. 하루하루가 쌓여 한 주 한 달 일 년이 되는 것처럼 올 한해도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올해의 트랜드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야기했습니다. ‘소확행’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쓴 신조어로,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 먹거나 서랍을 열면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고양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는 것처럼 일상의 사소한 행복이 인생을 진정 값지게 만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 생활 속 평범함에 깃든 행복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첫 장에 기억하고 싶은 시나 글을 쓰는 순간의 즐거움. 음반을 주문하고 받아 처음 들을 때의 귀를 쫑긋 세우는 즐거움. 와이셔츠를 깨끗하게 빨아 다리미로 주름을 펴고 입을 때의 상쾌함. 마음에 닿는 글을 만났을 때 줄을 긋고 노트에 옮겨 적으며 까만 글씨들을 바라보는 흐뭇함 등등 주변의 소소한 행복들은 까만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립니다. 그중에서도 음악회를 기다리는 즐거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올해 예고된 연주곡들을 보니 벌써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한 곡 한 곡 미리 들으며 연주를 기다리는 즐거움은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말러 교향곡 9번. 브람스 교향곡 2번 4번.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4번과 6번 비창.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10년 만에 다시 연주하는 브리튼 전쟁레퀴엠 등등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이 기분.

매 연주마다 [솔드 아웃!] 좋은 연주는 관객을 불러들입니다. 오랜 만에 일찍 공연장에 와 프리뷰를 들었습니다. 연주될 곡 해설과 작곡가에 대한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미리 연주에 빠져듭니다.

연주전 무대 위의 연주자들을 훑어보니 객원으로 타악기 주자를 모셔온 것 같네요. 오늘 연주될 곡에 꼭 필요한 타악기 주자가 필요했나봅니다. 시작하면서 보니 프로그램 연주곡이 약간 변화가 있네요. 샤브리에 [즐거운 행진곡]을 먼저 연주합니다. 경쾌함이 시작부터 드러납니다. 현악기는 유려하고 관악기는 화려하며 높은 소리의 목관악기는 깨끗합니다. 작은북 소리는 경쾌하고 심벌즈는 챙챙 거립니다. 짧고 강렬한 임펙트.

○오펜바흐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서곡. 트라이앵글 소리와 클라리넷의 굵은 울림, 화려한 높낮이의 오르내림이 객석을 꽉 잡고 몰입하게 만듭니다. 이어 첼로 소리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선율로 감쌉니다. 천국의 소리겠지요. 오보에와 플루트 바순. 하프 이런 천상의 소리들이 감미롭게 들립니다. 지옥은 날카롭고 기괴한 소리. 부서지는 듯한 소리 후 바이올린 독주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보여줍니다. 음악은 듣기에 따라서 이렇게 극과 극을 보여줍니다. 무희 타이스의 고뇌처럼 바이올린 소리는 마음을 쥐고 흔듭니다. 음악으로 표현된 두 극은 전체 총주로 합쳐지며 무언가를 드러냅니다. 그리고는 유명한 캉캉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리듬에 맞춰 춤이라도 추고 싶은 경쾌한 리듬이 객석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2018년 새해에는 이렇게 기쁘고 즐겁고 흥겨운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새해 선물 같습니다. 역시 저드 님! 대전 시향! 올해도 기대됩니다. ㅎㅎ

○샤미나드 [플루트를 위한 소협주곡] 여신 최나경 씨 등장입니다. 아름답고 강렬한 붉은 색 연주복과 빛나는 금빛 플루트. 유명한 그 감미로운 선율이 반짝거리는 플루트에서 흘러나옵니다. 금으로 만든 동글동글하고 반짝거리는 소리의 알갱이들은 가슴으로 굴러들어옵니다. 작고 가냘픈 이미지의 악기 플루트가 객석을 압도합니다. 가끔씩 퉁기는 하프 소리와 어울리며 금속관을 타고 높낮이로 오르내리며 귀를 간지럽힙니다.

카덴자! 높은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소리의 품격은 고상하고 높고 화려합니다. 황홀함. 깨끗함. 반짝거림. 이런 말들이 가장 잘 어울리는 소리입니다. 역시 최나경이네요.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냅니다.

○샤브리에 [오케스트라를 위한 스페인 광시곡 ‘에스파냐’] 오래 지속되고 있는 KBS 파업으로 클래식 FM을 들으면 자주 듣는 말이 “방송사 사정으로 재방송을 보내드립니다.”인데 오늘은 아침에 이 곡을 듣고 점심에 다시 또 들었는데 연주회장에서 다시 만납니다. ㅎㅎ 타악기와 현악기가 정밀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관악기의 내뿜는 소리와 어울리며 터집니다. 소리의 끝에 울리는 트라이앵글 소리.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바이올린 선율. 트럼본 소리의 분명함. 찰찰거리는 탬버린. 선언하듯 불어대는 트럼펫 소리. 활로 현을 퉁기며 리듬을 맞추고 새소리처럼 피콜로는 지저귑니다. 시원시원합니다. 이건 뭐 다양하게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느낌이랄까요. 화려한 음악은 향기롭고 맛있네요.

최나경 씨가 다시 등장합니다. 보네 [비제 카르멘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카르멘 환상곡)’] 프리뷰 시간에 들은 곡 설명을 바탕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듣습니다. 처음 짚시 음악 부분을 플루트는 유려하게 소리를 굴립니다. 그리고 두 번째 테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플루트 기교에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듣습니다. 호흡은 금관을 통과하여 몸짓으로, 소리로 나옵니다. 그리고 하바네라 선율. 카르멘의 요염하고 매혹적인 소리를 상상하며 빠져듭니다. “사랑은 자유로운 새.”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 카르멘은 플루트로 변하여 눈앞에서 아른거립니다. 듣기는 쉬운데 연주는 얼마나 화려한 기교를 요하는지 잠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발로 바닥을 차고 얼굴 옆으로 손을 모아 박수치며 춤추듯 강렬하고 경쾌한 선율이 플루트로 연주됩니다. 투우사의 노래로 연결되면서 익숙한 선율을 따라 흥얼거립니다. 왜 최나경의 연주가 최고인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최고의 연주입니다. 곡 연주 순서를 바꿔 1부 마지막을 최나경 씨의 연주로 확실하게 해주네요. 연주 소감으로 감회를 이야기합니다. 진심어린 감격과 시향 연주에 대한 찬사! 그리고 앙코르 곡 [이안 클라크의 대단한 기차경주]를 연주합니다. 탁한 바람 소리와 기차의 맥박을 표현한 독특한 곡인데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드록 음악을 연주하는 느낌이랄까요. 처음 듣는 독특하고 새로운 곡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작고 연약해 보이는 플루트가 아니라고 보란 듯이 연주한 현란함에 모두 혼을 빼앗겼습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길게 이어 부는 묘기 같은 연주로 끝맺습니다. SBS 스타킹 출연자답게 사람들을 놀라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