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만에 공연 후기를 적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 많은 공연을 보았지만 후기는 단 한 편도 쓰지 않았는데요.

한 번 안 쓰다 보니 그것도 습관이 되어 일년 내내 쓰지 않게 되었네요.

올해부터는 좀 각성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졸필이지만 다시 적어보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마음 먹고도 첫 공연의 후기를 건너 뛴다면 안 되겠지요?

어제 보았던 공연의 따끈한 감상이 아래에 이어집니다.

매해 그랬듯이 새해의 첫 공연은 당연히 대전시향의 '신년음악회'입니다.

전세계 음악계에서 신년음악회는 가장 중요시 여기는 공연 중 하나이기도 하죠.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는 매년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합니다.

지난 달의 송년음악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신년음악회 역시 완전 매진 됐으며, 표를 구하지 못 한 사람들은 뒤늦게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다고 하더군요.

시향 공연을 맘 편히 보시려면 저처럼 대전시향 시즌 패스에 가입하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일년 동안 보는 공연의 횟수를 보더라도 그 편이 가장 경제적이고 또 예매의 스트레스가 없어서 더욱 좋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지휘는 대전시향의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인 제임스 저드가 맡았습니다.

작년 공연에서는 객원지휘자가 지휘대에 섰는데요.

올해로 취임 3년차에 들고, 임기가 반년 남은 제임스 저드는 그간 맡은 공연에서 뛰어난 음악적 능력과 통솔력으로 대전시향의 실력과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대전의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지휘한 여러 공연 중 특히 2016년의 송년음악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은 그간 제가 음반 및 실황으로 들은 많은 연주 중 단연코 최고였다고 손꼽을 수 있습니다.

이번 신년음악회 역시 기대가 많은 공연입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협연자로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올라 왔는데요.

대전 출신의 최나경은 한국인 최초로 빈 심포니의 플루트 수석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지금은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는 젊고 날씬하고 예쁘고 실력있는 연주자입니다.

가냘픈 체구에서 나오는 힘과 기교는 물론이고, 어떻게 그렇게 긴 호흡으로 패시지들을 불어 낼 수 있는지, 두 눈으로 쳐다보고 귀로 듣고 있어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공연을 보여줍니다.

연주 뿐만 아니라 편곡 및 작곡에도 재능이 있어 재작년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플루트 버전으로 직접 편곡해서 협연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습니다.

샤브리에 _ 즐거운 행진곡

E. Chabrier _ Joyeuse Marche  

오펜바흐 _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 서곡
J. Offenbach _ Overture from the Opera 「Orpheus in the Underworld」

샤미나드 _ 플루트를 위한 소협주곡 라장조, 작품 107
C. Chaminade _ Flute Concertino, in D Major, Op.107 / 플루트 _ 최나경

샤브리에 _ 오케스트라를 위한 스페인 광시곡 ‘에스파냐’ 
E. Chabrier _ ‘España’ Rhapsody for Orchestra 

보네 _ 비제 카르멘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카르멘 환상곡)’ 
F. Borne _ 'Fantasie Brillante' on Themes from Bizet's Carmen / 플루트 _ 최나경 

- Intermission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_ 황제 왈츠, 작품 437
J. Strauss Ⅱ _ Emperor Waltz, Op. 437

요한 슈트라우스 2세 _ 프랑스풍 폴카 ‘크라펜의 숲속에서,’ 작품 336 
J. Strauss Ⅱ _ Im Krapfenwaldl, Polka Française, Op. 336

요한 슈트라우스 2세 _ 빠른 폴카, 헝가리 만세, 작품 332
J. Strauss Ⅱ _ Eljen a Magyar, Polka schnell, Op. 332

요한 슈트라우스 2세 _ 봄의 소리 왈츠, 작품 410
J. StraussⅡ _ Voices of Spring Waltz, Op. 410

요제프 슈트라우스 _ 프랑스풍 폴카, 대장간, 작품 269
J. Strauss _ Feuerfest, Polka Française, Op. 269

요제프슈트라우스 _ 빠른 폴카 ‘수다쟁이’, 작품 245
J. Strauss _ Plappermäulchen, Polka schnell, Op. 245

요제프 슈트라우스 _ 기수 폴카, 작품 278
J. Strauss _ Jokey-Polka, Op. 278

요한 슈트라우스 2세 _ 푸른 도나우강 왈츠, 작품 314
J. Strauss Ⅱ _ Blue Danube Waltz, Op. 314

샤브리에의 '즐거운 행진곡'은 원래는 1부의 마지막 곡이었는데, 최나경의 연주를 마지막곡으로 빼기 위해서 첫 번째 곡으로 올린 것 같네요.

짧지만 흥겹고 경쾌한 곡입니다.

역시 샤브리에의 '스페인 광시곡'은 평소 자주 들었던 음악인데, 이렇게 공연장에서 듣기는 처음이네요.

참 좋아 하는 곡입니다.

오펜바흐의 '친국과 지옥' 서곡은 일반적인 공연에서 뿐만 아니라 신년음악회의 단골 레파토리이죠.

최나경이 첫 번째로 협연한 '플루트를 위한 소협주곡'은 제목은 기억이 안 났으나 첫 소절을 듣자 마자 알겠더군요.

전에도 최나경의 연주로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여류 작곡가인 샤미나드의 작품인 이 곡은, 플루트가 낼 수 있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선율과 음색으로 관객들을 잠시 선계로 데려다 줍니다.

최나경의 연주이기 때문에 더 환상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1부 마지막 곡인 보네의 '화려한 환상곡'은 많은 '카르멘 환상곡' 중 플루트로 연주한 귀한 곡입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여러 아리아들의 테마를 엮어 화려하게 재탄생 시켰는데요.

종횡무진 누비는 플루트의 눈부신 활약이 돋보입니다.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환상곡과는 또다른 맛이 느껴집니다.

두 차례의 커튼콜 후 다시 등장한 최나경은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앙코르 곡으로 이안 클락의 'Great Train Race'란 곡을 소개합니다.

플루트로 기차의 출발과 질주, 그리고 경적 소리까지 완벽하게 묘사하는게 무척이나 신기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질주하는 기차의 모습을 호흡이 끊이지 않고 불어 대며 연주하는 것이 보고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숨은 언제 쉬나? 하며 넋을 잃고 바라보고만 이었죠.

나중에 찾아 보니 '순환 호흡'이라는 방법으로 연주를 하는 것이었더군요.

오랜 기간 수련으로 단련된 연주자들만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보기에도 힘겨운 연주가 끝이나자 관객들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입니다.

역시 최나경이네요.

2부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왈츠과 폴카 곡들이 연주 되었습니다.

빈 왈츠의 대부 하면 요한 슈트라우스와 그의 아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꼽는데요.

이번 공연에서는 아버지 슈트라우스의 곡 대신에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그의 동생인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곡들이 연주가 되었습니다.

역시 그 집안의 곡들은 대개 느낌이 비슷하더군요.

발랄하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합니다.

짧은 곡들을 계속해서 연주하는 대전시향 단원들과 지휘자가 새삼 고맙게 생각됩니다.

마지막 곡으로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왈츠를 연주했는데요.

도입부에서 호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 곡이죠.

제임스 저드 이전의 금관, 특히 호른은 촛점이 없는 연주로 유명했는데요.

지휘자의 능력인지, 아니면 물갈이된 연주자 때문인지 뚜렷하게 변화된 모습에 관객들의 귀가 즐거워졌습니다.

저도 귀를 쫑긋 세우고 도입부를 기대했습니다.

빠바바밤~~ 빰빰~빰빰~

만족스럽습니다.

부드럽고 명확한 호른 소리에 제 마음이 다 풀리는 군요.

마치 늦은 겨울, 얼어 붙은 도나우강이 녹아 흐르는 것 같습니다.

이어진 아름다은 선율에 미소가 띄어집니다.

신년음악회의 마무리는 역시 이 곡이 제격이 아닌가 합니다.

연주가 끝나고 퇴장한 지휘자는 짙은 녹색의 두루마기를 입고 다시 등장을 합니다.

마이크를 잡고서, 'Orchestra and I wish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를 합니다.

앙코르 곡으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빠른 폴카'를 연주했습니다.

앙코르 곡을 하나 더 했는데요.

이 곡을 왜 안 하나 했습니다.

아버지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두 번째 앙코르 곡으로 선사합니다.

이 곡은 지휘자가 관객의 박수를 유도하며 함께 지휘하는 곡으로 유명한데요.

이렇게 쉬운 리듬도 못 맞추는 관객들도 가끔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18년 대전시향의 신년음악회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제임스 저드의 지휘라 좋았고, 모든 곡의 완성도가 높아서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임기가 올해 중반까지라 아쉬웠는데, 올해 대전시향의 공연 계획을 보니 11월까지 총 6회의 지휘가 예정되어 있더군요.

확인해 보지는 못 했으나 아마도 계약이 연장된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대전시향과 대전 시민을 위해서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있을 수 없겠네요.

올 한 해도 대전시향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음악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욱 다채로운 레파토리와 더 향상된 실력으로 대전 시민들에게 좋은 음악을 계속 들려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