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관현악을 위한 무용시 ‘라 발스’ 

연주를 들으러 가는 동안 바라본 주변은 온통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고 해 질 무렵의 예술의전당은 건물을 비춘 조명 빛에 더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일찍부터 연주회장으로 찾아온 관객들은 오늘 연주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는 듯합니다.  

《라 발스-관현악을 위한 무용시》는 모리스 라벨이 1919~20년에 작곡한 관현악곡으로 빈 왈츠에 대한 예찬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라벨은 이 곡의 악보 첫 페이지에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왈츠를 추는 남녀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점차 구름은 흩어지고 왈츠를 추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홀을 볼 수 있다. 장면은 서서히 밝아진다. 이윽고 포르티시모에서 상들리에의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그곳은 1855년 경 한 황실의 궁전이다.”라고 써놓았답니다. 

곡은 시작부터가 낮고 거친 콘트라베이스의 울림으로 어딘지 어두운 정감을 드러내고 평상시 점잖은 바순 소리가 표정이 바뀌어 음산한 소리를 냅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이 더해지고 3박자의 왈츠 리듬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분위기는 고조됩니다. 아름다운 하프 소리. 오늘따라 비올라 소리가 더 품위 있게 들립니다. 트럼본은 금빛을 발하며 강하고 분명한 소리를 객석으로 뿜어냅니다. 지휘자 저드 님은 춤곡에 맞춰 춤추듯 두 손을 높이 쳐들어 지시하고 독려하며 정열적인 몸짓으로 오케스트라와 하나 됩니다. 마침내 휘몰아치며 뜨겁게 분출하는 왈츠의 소용돌이로 절정에 이른 순간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광란의 춤은 멈춥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다 다르듯이 곡에도 작곡가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라벨 특유의 선율이랄까 독특한 리듬과 음색. 라벨만의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뭔가 나른한 것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곡조들이 마음을 끌어들입니다. 구름 위에서 둥실 둥실 떠다니는 것처럼 춤은 밀고 당기며 빙빙 돕니다. 소리들은 황홀한 어지러움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왈츠 리듬을 들으며 르누아르의 그림 [부지발의 무도회]를 떠올립니다. 쿵쿵 울리는 팀파니 소리는 가슴 뛰게 하고 타악기 소리는 경쾌하며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현악기 소리는 마음을 휘어잡고 빠른 템포는 몸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듭니다.  

전혀 다른 음악 장르지만 런던보이스의 [할렘 디자이어]나 모던 토킹의 [유아 마이 하트, 유아 마이 소울]이나 [브라더 루이]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 같은 곡은 전주 부분만 들어도 벌써 몸이 반응하며 춤추고 싶게 만드는데 빈의 화려한 궁정에서 라 발스 같은 왈츠 곡을 들으며 정신없이 빙빙 돌며 춤추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어지럽습니다. 오케스트라 총주에 탬버린 소리는 찰찰 울리고 탐탐은 거대한 쇳소리를 내고 큰북과 팀파니가 터지면서 춤은 끝이 납니다. 

에피타이저로 벌써 마음은 후끈 달아오르니 큰 욕망을 자극하는 작은 자극이 오늘 음악의 성찬을 예고합니다. 

R. 슈트라우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부를레스케(익살스러운 광대극)’, 작품145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은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것입니다. 어디에 이렇게 좋은 음악들이 숨어 있었을까 새삼 놀라며 즐거워합니다. 음악회가 아니었으면 이런 음악을 어떻게 알게 될까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부를레스케]. 처음 듣는 용어 부를레스케. 검색해보니 Burleske : 익살스러운 광대극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관련 정보를 보니 “당시 21세의 젊은 작곡가는 자신의 멘토이자 평생의 롤 모델이었던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low)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 위대한 지휘자는 마이닝겐 궁정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며 악단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는데 젊은 슈트라우스를 만난 뒤 그의 천부적인 재능에 감탄한 나머지 브람스 이후 최고의 작곡가로 성장할 수 있음을 간파했으며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지휘 경험이 별로 없었던 슈트라우스를 1885년 10월에 자신의 부지휘자로 임명했고 그해 12월에는 마이닝겐의 자리를 완전히 그에게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아하! 그렇구나. 그렇게 또 하나의 음악적 연결을 알게 됩니다. 음악은 이렇게 다양한 얽힘과 연결에서 탄생했고 오늘 내게 찾아와 음악의 세계와 접속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를 읽다 얼핏 언급되었던 적 있는 부를레스케를 이렇게 만납니다.  

사전 정보를 읽고 유투브 영상으로 부를레스케를 들어보니 또 하나의 매력적인 곡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연주가 특별한 것은 이 곡을 한국인 최초로 2017 제15회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 한국인 최다 국제 콩쿠르 우승(통상 8회). ‘방돔 프라이즈’ 한국인 최초 우승한 선우예권의 연주로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기가 최고로 뛰어오른 것은 물론이고 이번 콩쿠르의 우승으로 미국에서 3년간 공연과 음반 발매의 기회를 얻게 되어 그의 연주를 듣기가 어려울 것이므로 이번 연주가 더욱 귀중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최종 결선 곡이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들려주었으면 어뗐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팀파니가 주연입니다. 처음 시작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피아노는 시작부터 독특한 리듬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며 높고 낮은 음을 오르내립니다. 춤추듯 현악기는 빠르게 반응하며 서로 주고받는 멜로디의 첫인상은 강렬합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하듯, 빠름과 느림이 함께 있으며 부드러움과 강함의 소리들이 함께 뒤섞여 있습니다. 단도직입(單刀直入). 혼자서 칼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적진으로 쳐들어가는 장수처럼 피아노 음은 분명하고 정확하게 급소를 찌릅니다. 첼로 파트의 소리는 넓고 깊고 풍부한 음색으로 맞섭니다. 조용한 가운데 퍼지는 카덴자. 모든 사람이 숨죽이고 듣습니다. 매끄러운 현악기 소리. 자신 있고 분명한 타건과 음악에 깊이 녹아든 몸짓으로 건반을 누를 때마다 피아노는 젊고 신선한 음들을 쏟아냅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여유 있고 그러면서도 긴장된 부분에서는 절대로 느슨해지지 않게 곡과 어울리는 연주를 보여줍니다. 콩쿠르 우승 후의 뿌듯함과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오케스트라 총주로 이어지는 거대한 음의 물결. 솟아오른 큰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피아노는 자유자재로 음 위에 올라 타 소리의 물결이 가는 대로 미끄러지며 놉니다. 음악은 젊고 독특하며 힘이 있고 경쾌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열이 담겨 있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을 음악으로 체험합니다. 빠르기와 강력한 타건은 심장의 박동과 연결되며 고조되고 흥분되며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마구 두드리는 팀파니 소리는 젊은 피의 박동입니다. 피아노 속주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입니다. 그 음악을 젊은 연주자 선우예권이 연주합니다. 음악과 연주자가 어울려 딱 맞는 느낌. 젊음은 음악으로 반짝 반짝 빛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연주는 감동적이고 패기와 힘이 넘칩니다. 좋은 연주는 관객을 몰입하게하고 한 음 한 음 한 순간도 놓칠 수 없게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소리의 그물로 객석을 사로잡습니다. 환상적이다. 놀랍다. 대단하다. 우리는 뭔가에 압도되었을 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낮은 음부터 높은 음으로 속주(速奏)하는 피아노 소리에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고 한 음도 놓칠 수 없는 순간 짧게 높은 음을 짚고 팀파니는 한 번 퉁기고 하늘로 연기처럼 사라지듯 끝이 납니다. 꾸미지 않고 입은 청바지 차림의 멋진 모습처럼 상큼하고 발랄하며 분명한 소리에 매료되었습니다.  

모두가 마음으로 원하는 앙코르. 박수는 그를 다시 불러냅니다. 피아노 하나 만으로 관객과 만나는 흐뭇한 시간. 모두는 음악에 심취합니다. 조용히 시작된 곡은 강하고 높고 정열적인 곡조를 타기도 하고 잔잔한 호수 위를 떠다니는 백조처럼 우아하고 건반을 오르내리는 손은 부드러우며 유연합니다. 소리만이 지배하는 그래서 소리에 꽉 붙잡힌 행복한 영혼들. 가장 작은 피아니시모로 앙코르는 끝이 납니다. 자막으로 알려준 앙코르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중 “러브 듀엣” 젊음에 젊음이 환호합니다. 앞자리의 아가씨들이 벌떡 일어서서 함성과 환호를 지르며 객석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 작품, 45 

1악장 빠르지 않게. 

저드 님이 오고 나서 연주를 들으며 느낀 점은 곡을 조금도 늦추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곡이 가지고 있는 그 세기와 빠르기를 끝까지 고수하며 정확한 힘과 소리의 안배를 추구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라흐만의 음색이 있습니다. 조용한 시작 후 강렬한 현악기와 팀파니 호른 소리가 합쳐지며 시작부터 객석을 긴장시킵니다. 하나의 리듬은 각각의 악기로 일정하게 연주되며 흩어졌다가 합쳐지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보에가 빠름을 멈춰 세우고 클라리넷과 섹소폰 잉글리시호른이 합세하며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교향적 무곡에서 최고의 스타는 섹소폰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색이 또 있을까요. 바순과 플루트도 섹소폰과 아름다움을 견줍니다. 호른도 질세라 슬쩍 들어오고 피아노까지 아름다운 선율에 함께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를 듣는 즐거움은 이런 선율을 만날 때입니다. 베이스 클라리넷과 바순들은 능청스럽게 끼어들고 다시 처음 그 멜로디에 합쳐지며 커지고 터집니다. 심벌즈와 탬버린에 금관악기까지 더해지면서 1악장 주선율은 커질 대로 커집니다. 어디서 맑은 실로폰 소리가 들립니다.  

2악장 움직임을 가지고 조금 느리게(왈츠의 빠르기로) 

약음기를 단 트럼펫과 트럼본이 본래의 소리를 감추며 나타나면 현악기는 받아 왈츠를 연주합니다. 쿵짝짝 쿵짝짝. 김필균 악장의 바이올린 솔로. 군계일학처럼 소리는 빛납니다. 은은하고 깊은 목관악기 소리. 민승우 단원의 잉글리시 호른과 언제나 믿음직하고 분명한 소리를 들려주는 홍수은 수석의 오보에. 어느 악기 하나라도 감출 수 없다는 듯 각각의 음색이 어우러지며 음악을 만듭니다. 아~ 이 왈츠는 라흐마니노프만의 슬픈 왈츠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묻어있는 리듬에 발을 끌며 춤추는 듯합니다. 라벨의 왈츠와는 다른 단 둘이만 추는 듯한 조용하고 숙연한 왈츠입니다. 말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깊숙한 곳에 고여 있는 슬픔을 어루만지듯 음악은 쿵짝짝 쿵짝짝 리듬을 타며 속으로, 속으로 눈물을 삼킵니다. 조 라이트 감독의 2012년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키이라 나이틀리)와 브론스키(아론 존스)가 만나 춤추는 장면을 생각합니다. 춤의 절정에서 모두가 멈춰있고 아무도 없는 넓은 홀에서 서로에게 매료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둘이 춤추는 장면을 떠올리며 듣습니다. 

3악장 매우 느리게-빠르고 생기있게-처음과 같이 매우 느리게-빠르고 생기있게 

오보에와 플루트, 호른과 베이스 클라리넷이 조용히 등장하며 종소리와 템버린 그리고 빠르게 연주되는 현악기 소리가 들리며 3악장은 긴장하게 하는 리듬이 이 곳 저 곳에서 튀어나옵니다. 열정적인 연주에 비올라 김민정 수석의 활 한 올이 끊어졌네요. 우드락 소리와 탬버린 팀파니가 합쳐지며 점점 커지는 소리 후 멈추어 세우듯 현악기가 리듬을 제어합니다. 뭔가 알 수 없는 선율들이 3악장에 섞입니다. 마음 깊은 곳 심금을 울리는 베이스 클라리넷 소리. 들릴 듯 말 듯한 더블베이스 소리. 애처롭게 울리는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현악기 선율. 음의 덩어리가 일렁거린다고 할까요? 대패질 해 깎아놓은 나뭇결처럼 깔끔한 선율입니다. 그리고는 선언하듯 트럼펫이 나서면서 변한 리듬에 모든 악기는 따라나섭니다. 작정한 듯 모든 악기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며 치고 두드리고 때리고 울리고 흔들고 켜면서 소리는 부각되고 스네어 드럼은 음악에 속도를 끌어올립니다. 그렇게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음악은 끝이 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처럼 정신없이 음악에 맞춰 춤추다가 끝을 예상하지 못하고 아쉬운 여운을 남기며 음악은 끝이 납니다.  

연주에 흠뻑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 멋진 연주였습니다. 정말 깔끔하고 완벽한 연주였습니다. 감동적인 연주에 보내는 박수와 환호성을 들으며 객석에 앉아 흐뭇한 마음으로 단원들을 바라봅니다. 음악으로 하나 된 이 순간은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요. 저드 님이 활약한 주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지목하여 일으켜 세워 격려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아름다운 연주는 다음 연주를 기대하게 합니다. 아름다운 가을밤을 수놓을 브람스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