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교향악단 마스터즈 시리즈 8

'프랑스 감성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나다!'

2017년 8월 10일(목) 19:30

라벨 피아노 협주곡 사장조 피아노 : 파스칼 로제

음악이 주는 감동은 늘 새롭고 다양하게 다가옵니다. 처음 만날 때의 호기심과 궁금함, 관심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하고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점점 더 깊이 알게 되면서 사랑하게 되고 표정과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찾듯 세세한 음의 조화와 다양한 세기에 따라 표현되는 악기들의 표정을 보는 즐거움을 갖게 됩니다.

바그너와 말러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들을 때는 그 장대함과 우람함 거대함에 압도되기도 하지만 라벨의 음악은 파스텔톤 같이 부드럽고 뽀얀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젤리를 입 안에서 혀로 맛보는 듯하고 생기발랄한 아가씨의 발걸음처럼 명랑하기도 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웃음처럼 마음을 흔들기도 합니다.

라벨 피아노협주곡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언젠가 꼭 만나보고 싶은 라벨의 피아노협주곡.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엘렌 그리모가 연주하는 음반으로 듣고 있었는데 대전시향에서 파스칼 로제를 협연자로 모시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예매를 해놓았습니다. 그의 연주는 사티의 짐노페디 음반으로 들으며 알게 되었는데 파스칼 로제가 연주하는 라벨을 듣게 되다니.... 참 마음이 행복한 기대감으로 흰구름처럼 둥실둥실 떠올랐습니다.

타악기의 시작으로 피콜로가 새소리처럼 지저귀고 피아노는 흰물결처럼 위아래로 흐릅니다. 흥미진진한 서두. 뭔가 신기하고 반짝이는 것들이 쏟아져 나올 것처럼 잔뜩 기대감에 부풀게 합니다. 트럼펫 트럼본 오보에 소리는 피아노와 눈빛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 하고 하프와 호른의 부드러운 울림. 피아노는 신비한 무지개처럼 색색으로 빛납니다. 힘찬 계곡물처럼 흐르기도 하고 산을 뛰어다니는 노루의 발걸음처럼 피아노 건반 위를 뛰어다닙니다. 메아리처럼 들리는 하프소리. 숨바꼭질하듯 소리들은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관객의 애를 태웁니다. 피아노 속주. 물방울이 튀듯 튕겨나오는 피아노 음 하나하나는 오케스트라와 어울리며 최 정점에서 터집니다.

1악장의 경쾌한 소리는 2악장에서 완전한 고요함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2악장이라고 하는 2악장. 아~ 마음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아름다운 선율에 매료됩니다. 아름다움은 소리로 드러나지만 아름다움을 글로 옮겨놓을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그물에 잡힌 물고기처럼 가슴으로 번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사로잡혀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피아노 소리 위로 들리는 플루트와 클라리넷 소리는 정말 천상의 음악입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아름다운 소리들만 있는 곳일 것입니다. 잉글리시 호른의 우아한 소리. 피아노 소리는 다른 악기 소리와 어울리고 받쳐주기도 하고 치고 나오기도 하면서 넓은 들판에 서서 바람을 맞는 시원함으로 나아갑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움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갖게 합니다. 잉글리시 호른 소리는 2악장의 숨은 진주입니다. 2악장이 끝나는 순간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는 순간입니다. 모두에게 나눠준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에 스며들어 음이 사라지고난 여운을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부드러움 뒤의 강렬한 타건 푸드덕대는 날갯짓처럼 각 악기들은 깃을 치며 날아오르고 높은음 건반으로 뛰어다니는 소리에 악기들은 잠깐 잠깐씩 자신들을 드러냅니다. 짧은 임펙트! 간결하게 취할 새도 없이 한 번에 몰아쳐 끝내버리는 깔끔한 3악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떠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넋이 나가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행복한 아쉬움이라고 할까요?

좋은 연주, 감동의 연주는 박수를 부릅니다. 무대로 쏟아져 나오는 박수는 받은 감동과 흐뭇함의 환호입니다. 박수에 대한 몇 번의 화답 후 사티의 그노시엔느를 연주해 주었습니다. 내심 기대하던 사티가 나오니 역시! 하는 마음으로 감사했습니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들을 때마다 새로운 매력에 빠져듭니다. 베를리오즈 자신의 체험을 음악으로 표현한 스토리가 있어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하소연하듯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 같습니다. 1악장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더 애처롭습니다. 만남의 아름다움이 1악장에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장 멋진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음악은 화려하게 빛이 납니다. 놀이공원의 빙빙 도는 기구에 올라 탄 것처럼 가슴 설레는 마음. 함께 있어 행복한 순간. 함께 걷기만 해도 즐거운 시간.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기분. 1악장은 그런 행복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눈감고 듣습니다. 악기들은 놀이기구처럼 위아래로 흔들고 둥실 떠오르게 하고 선율은 화려한 꽃이 피어있는 정원을 걷는 발걸음처럼 가볍고 상쾌합니다.

2악장의 무도회. 동양 문화권에서 태어나서 서양의 문화 중 제일 부러운 것이 무도회가 아닐까요. 아름답고 멋진 남녀가 왈츠를 추면서 플로어 위를 빙빙 도는 모습을 영화를 통해 보면서 우리와는 다른 정말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부러워했습니다. 우리에게 춤은 뭔가 속된 것, 함부로 구는 것, 나대는 것, 까부는 것으로 여겨졌고 젊은 시절 고고장 디스코텍 나이트클럽 같은 곳은 함부로 갈 곳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 춤은 우리와는 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춤추고 싶어 하는지. 그런 이중적인 심리, 갇혀진 심리가 서양의 왈츠 음악을 들으면 더욱 부럽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스트라우스의 왈츠는 봄 차이코프스키의 왈츠는 슬픔이라면 베를리오즈의 왈츠는 젊음 같습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허리를 살짝 감싸고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빙빙 도는 춤. 2악장을 들으며 누구나 꿈꾸는 아름다운 춤에 빠져듭니다. 

3악장 들판의 풍경. 오늘은 잉글리시호른이 활약하는 날입니다. 저녁 무렵 두 목동의 피리소리가 들립니다. 무대 밖에서 홍수은 오보에 수석이 부는 아련한 소리가 들립니다. 작곡가의 의도가 잘 표현된 소리입니다. 음반에서는 크고 작은 소리로만 들리지만 현장에서 들으면 그 소리의 실체를 확인하게 됩니다. 고요한 들판에 음악소리는 바람을 타고 평화롭게 흩어졌다 모여 어울립니다. 김필균 악장과 객원 바이올린 악장이 연주하는 현악기 소리는 분명하고 깔끔합니다. 이송희 악장이 이끄는 첼로 파트의 풍성한 음색. 지휘자의 무뚝뚝한 표정과 손짓에도 각 파트는 각각의 색깔로 3악장을 표현합니다. 고요함 속의 고독. 3악장은 평온한 상황에서 혹시 닥칠지 모르는 불안이 어두운 예감으로 드러납니다.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음색에는 그런 행복함 뒤에 숨겨진 불안이 담겨있습니다. 팀파니의 우루룽거리는 소리에 잉글리시 호른 소리는 금방까지 맑은 하늘이었는데 저쪽에서 먹구름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대전 출신 플루티스트 김유빈 씨가 연주한 것을 연주가 끝나고 자막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팀파니 소리의 두려운 행진. 첼로 소리에 바순의 경고. 긴장된 소리와 내뿜는 트럼본 소리 바순과 튜바와 트럼펫이 쩌렁쩌렁 울어댑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마치 많은 사람들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행진곡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심벌즈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큰 소리를 내고 큰 북이 쾅쾅. 긴박한 현악기의 리듬. 상상만 해도 끔찍한 단두대의 처형 장면이 일순간 멈추면서 음악으로 표현됩니다.

5악장 마녀들의 밤잔치의 꿈. 더블베이스와 현악기의 기괴한 소리. 목관악기에 피콜로 소리를 생각하고 들으면 마녀와 요괴들이 내는 야릇한 소리, 신음 소리, 오싹하는 웃음 소리, 고함 소리로 들립니다. 클라리넷은 가장 기괴한 소리로 마녀들의 잔치를 드러냅니다. 무대 밖에서 들리는 종소리. 종소리는 튜바 소리를 부르고 점점 커지면서 어딘가로 이끕니다. 라벨 2악장이 천국의 소리라면 환상교향곡의 5악장은 저승에서 들리는 소리입니다. 음악은 이렇게 천국과 지옥을 들려줍니다. 극과 극은 아름다움에 맞닿아 있는 듯 무섭고 끔찍한 곳에서도 종소리는 아름답게 들립니다.

오늘 들려준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이야기가 있어 처음과 끝이 연결됩니다. 객원 지휘자 마티아스 베메르트의 지휘는 무심한 듯 무표정한 듯 하지만 음악이 갖고 있는 내용물을 알차게 표현했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음악은 항상 최선입니다. 힘들고 지쳤을 때에 위로를 주고 기쁨을 함께하고 아름다움을 꿈꾸게 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그래서 또 듣고 싶게 하고 기다리고 함께 합니다.

멋진 연주에 늘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환호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관객이 보내는 환호와 박수에 단원들도 흐뭇한 마음으로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으로 교감하는 흐뭇함을 느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