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퍼지는 비타민 클래식...

 

평범한 일상이 아무렇지도 않을걸까.

놀라움도 즐거움도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이지만.. 어색함도 없고 조마조마함도 없는...

그런 일상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중년이라고 말하기에는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 아직은 앳된 듯 보이는데..

어느 날.. 대전 시민천문대에 들렀을 때에 찬연히 빛나는 별빛들 사이 시낭송 소리에

나는 특별한 감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여전했다. 평범한 일상에 안도를 하는 평범한 중년이지만.. 여전히 무언가에 감동받고

싶어하고 여전히 특별한 아름다움에 빠지고 싶어했던 예전 그대로였던 것이다.

 

이제 초등 1학년인 딸아이는 아빠를 좋아한다 속시원히 말해주지 않는 밀당의 고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게임에서 나는 끌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오로지 어떻하면 사랑받으며 끌려갈수 있을까 수시로 인터넷을 뒤지면서 말이다.

 

그러다 걸려든 한밭대학교 개교 90주년 대전시립교향악단의 [비타민클래식]

이쯤에서 나는.. 빨간펜을 긋고싶다. 클래식에, 교향악단에, 오케스트라에, 게다가 공짜로

볼 수 있으면서도 초대형식이라니.. 참으로 멋스럽지 않은가..

 

대전시립교향악단은 처음이었다. 물론 오케스트라도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설레임과 기대감에 젖어있다니.. 묘하다.

카르멘 서곡.. 투우사의 노래.. 푸치니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프로그램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법한 낯설지 않은 대중적이었다.

 

제목은 몰라도  어떤 영화가.. 어떤 CF가.. 심지어 어떤 행사장이 떠올려질만큼 익숙했던 음악이랄까.

지휘를 맡은 마에스트로 류명우.. 그는 베토벤바이러스에서 보던 그런 마에스트로가 아니었다.

악단에는 똥덩어리도 없었고 까칠한 지휘자도 없었다. 연주가 시작하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길잡아 즐겁게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류명우.. 이사람은 혹시 만담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가면서 말이다.

 

대전 시립교향악단의 오케스트라는 웅장했고 감미로왔다.

내 눈은 무대를 바라보는 내내 사치스러웠으며 내 귀는 음악이 들려오는 매 순간 섬세하게 반응했다.

오페라의 내용도 모르는데.. 노랫말도 없는 멜로디에 이렇게 황홀함에 빠질 수 있다니..

그것이 비타민클래식의 프로그램때문인지.. 아니면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인지 나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시간.. 나는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대전시립교향악단에 의한 또 한번의 비타민클래식이 카이스트에서 연주되었다.

아내도 나도.. 심지어 초등 1년인 딸아이도..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 섬세함에 더 이상 주눅들지 않았다.

우리는 비타민을 두 번째 맞고 있는 경험자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비타민이라는 말에 무작정 팔뚝을 내밀고 주사바늘에 꽃혔다면

이제는 간호사의 표정도 살펴보고.. 주사바늘의 날카로움도.. 주사약의 양도 곁눈질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지휘자 류명우씨도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위트있는 해설은 커녕 굳게 다문 입술과 표정없는 얼굴에 괜한 긴장감이 더해지기도 했다.

 

한밭대학교에서 경험한 첫 번째 비타민 클래식에서는 예를 들어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의

가장 친숙한 4악장만 연주하면서 익숙한 음악의 다양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카이스트 비타민 클래식

에서는 [신세계로부터]의 1악장과 4악장 모두를 연주하면서 음악의 다양성은 줄었지만 보다 깊이있고

풍부한 오케스트라의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여담같지만.. 드보르작 [신세계로부터]를 감상하면서 떠오른 것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향한 수많은 이민노동자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악장이 바뀌면서 그들의 감정변화랄까..

새로운 세계에서의 고달픔과 미래에 대한 격정적인 희망.. 고향에 대한 그리움까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한 권의 책속에서 살아있는 주인공의 인생을 살펴보듯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또 하나.. 대전시립교향악단의 두 번째 오케스트라를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한 가지를 알게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즐거움은 그 전율과 감동이 소리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악기의 소리가 들려올 때 그 소리를 내는 악기를 찾아 두리번 거리면서

나는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 악기의 연주자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따라 천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놀라운 반가움이었다.

 

 

미처 몰랐는데.. 이렇게 좋은 공연을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시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되었다. 그리고 대전시립교향악단이 그렇게 낯설고 어색한 단체가 아니라는것도..

오케스트라가 그렇게 딱딱하고 권위적이지 않다는 것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되었다.

 

즐거웠으며 유익했으며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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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연주해주신 대전시립교향악단 연주자 모든 분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 카이스트 비타민클래식이 끝나고 주차장가는 길에.. 평범한 옷차림에 백팩을 매고 퇴근하는

류명우 지휘자님과 마주쳤는데 순간 아주 평범한 이웃처럼 느껴지더군요..

 

역시 옷이 날개구나 느꼈다지만... 친숙하게 다가가 싸인을 받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제 낮짝이 너무나 얇고 부끄러워 다가서지 못했네요. 다음에 다시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모른척

들이대도 괜찮겠지요.

 

당신들 모두의 하루하루가 언제나 즐겁고 행운도 함께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