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말아 많아지고 오래 같이 이야기를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그런 반가운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만날 기대감에 기다림은 행복한 즐거움입니다. 말러를 연주한다는 것만으로 화제가 되고 연주를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면 이제 말러는 특수한 마니아층만의 음악이 아닌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그런 말러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7월 8일 대전 시향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때의 충격과 감동은 고스란히 마음속에 각인되어 꺼내 보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첫 악장의 장대함과 흥분으로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에 객석이 박수를 보냈었고 제인 더튼의 풍부하면서도 객석을 사로잡는 소리에 모두가 숨죽이고 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 말러 3번을 십여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자리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9월 지휘자 제임스 저드 님이 취임하셨고 말러 연주 전문으로 정평이 나있어 말러 연주에 대한 기대를 한층 더 갖게 했습니다. 이미 말러 1번을 연주했고 이제 3번을 연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가장 좋은 좌석을 예매하고 기다렸습니다.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대전 시민의 문화 수준이 정말 너무 높고 음악에 대한 사랑과 저변이 든든해서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꽉 찬 객석은 그런 음악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증명해줍니다. 전 악장을 한 번에 연주할까? 아니면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가질까? 생각을 했는데 입장할 때 오늘 연주는 쉬지 않고 연주한다는 말을 듣고 잘 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러 교향곡은 특히 금관악기가 관건인데 물론 잘 해내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무대를 유심히 바라봅니다. 낯익은 얼굴 뒤로 낯선 연주자들이 보입니다. 특히 호른 트럼펫 트럼본 그리고 팀파니스트가 외국 연주자인 것이 눈에 띱니다. 오케스트라 배치는 바이올린1, 2를 양쪽으로 배치했고 첼로가 중간에 그 뒤로 베이스를 배치했습니다. 현의 소리가 더 뚜렷하면서도 조화가 좋을 듯합니다.

1악장에 표시된 것처럼 단호하고 힘차게. “목신이 잠을 깨고 여름이 행진해 오는 것”을 8대의 호른이 힘차게 연주하며 시작합니다. 마치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로잡듯 호른은 곧고 분명합니다. 심벌즈가 터지고 총주가 가슴을 후련하게 만듭니다. 작은 소리들은 큰 소리를 숨겨두고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는 신비스럽고 두려운 긴장감을 갖게 합니다. 간간히 들리는 바순과 온몸으로 활을 긋는 첼로 소리. 아~ 이미 음악은 온 몸으로 스며들고 리듬은 견고하며 분명합니다. 약음기의 트럼펫 소리. 홍수은 악장의 오보에 소리는 언제나 믿음직하고 김필균 악장의 바이올린 솔로 소리는 감미롭습니다. 탬버린의 찰랑거리는 소리. 그중 말러 3번의 최고 스타는 트럼본입니다. 이 트럼본 소리를 듣기 위해 말러3번을 듣는 것이지요. 팜플렛을 뒤져보니 객원 연주자 크리스찬 골드스미스 씨와 트럼펫 제프리 케이 씨가 오케스트라 정 중앙에 앉아 연주합니다.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지만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금관악기를 이렇게 연주하려면 전문 연주자를 데려와야 했을 테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음악은 빛의 삼원색 빨강, 초록, 파랑이 섞여 가장 밝은 흰색을 만들 듯이 서로 합쳐지면서 음악의 가장 밝은 색으로 피어납니다. 눈 감고 흐뭇하게 감상하는 기분. 꼭 맞는 일체감이 주는 시원함과 두근거림. 묘한 긴장을 주는 소리들이 시선을 꼭 붙들어 놓습니다. 트럼본! 트럼본! 듣는 내내 마음속으로 트럼본을 칭찬합니다. 어떤 곡이 이렇게 트럼본으로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쥐락펴락한다는 말처럼 금빛 슬라이드를 쭉 내밀며 가장 낮은 음을 연주하고 끌어당기며 내는 짱짱한 소리에 몸이 빨려들어 갑니다. 이에 질세라 호른 소리는 점잖고 관록 있는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띵~띵 울리는 트라이앵글 소리. 가끔씩 뒷짐 지고 지나가듯 어흠 어흠 하는 튜바 소리. 객석을 향해 높이 치켜들고 부는 목관 악기들. 지휘자 님은 모든 소리들을 하나 하나 끌어내고 자제하고 격려하고 어루만지듯 이리 저리 휘저으며 온 몸으로 지휘합니다. 1악장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소리들의 아우성과 꿈틀거림. 판과 함께 시작된 여름의 행렬이 점점 커지면서 모든 생명체들이 다 함께 일어나 소란스러운 행진을 하듯 1악장은 끝을 맺고 합창단이 등장합니다. 흰 옷을 입은 아기 천사들과 예쁜 천사들이 무대를 가득 메우고 메조 소프라노 김정미 씨가 등장합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오보에 홍수은 수석의 연주는 최고입니다. 소리의 세기와 깊이와 색깔이 곡에 잘 어울려 믿음직합니다. 물론 모든 파트의 안정된 연주가 있어 각각의 솔로 소리들은 아름답게 빛이 납니다. 들판의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고 선선한 바람이 불고 벌과 나비들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풍경이 각각의 악기들로 표현됩니다. 현악기의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은 금빛으로 퍼지고 목관악기와 금관악기의 어울림에 안개처럼 들리는 하프소리. 말러 특유의 독특한 리듬과 변주를 즐기는 묘미. 3악장에서 주의 깊게 들어야 할 소리는 무대 밖의 트럼펫 소리입니다. 말러는 어떻게 이런 음악적 장치를 생각했을까요. 멀리 들리는 아련한 소리는 신비로움과 호기심으로 들립니다. 숲의 동물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숲의 뻐꾸기는 클라리넷으로 상쾌하게 지저귀고 물결치듯 음의 물결은 하프소리로 흘러넘치다 높은 하프음 소리에 오케스트라 총주와 팀파니의 둥둥거림으로 한 순간에 끝을 맺습니다.

무대 앞에 곧게 앉아 기다리던 메조 소프라노 김정미 씨가 일어섭니다.

“오 사람들아! 이 깊은 밤에 무엇을 말하는가?”

낮게 가슴을 울리는 소리. 천천히 느리게 한 음 한 음을 간절하게 선언합니다. 그 소리에 어울리는 오보에 소리와 잉글리시 호른 소리는 독창자의 소리를 한층 더 숭고하게 만듭니다.

아기 천사들의 빔~ 밤~ 소리는 종소리와 함께 울려 퍼집니다. 때 묻지 않은 소리는 언제나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흰 옷을 입은 천사들의 맑고 예쁜 소리들.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의 말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라! 그리하면 천국의 기쁨을 얻게 되리라!”

음악은 단순히 소리에만 그치지 않고 회개와 용서와 사랑을 표현합니다. 앞의 악장들은 6악장의 고요함과 처연함 의미심장함을 위한 준비인 듯합니다. 말러 5번 4악장의 아다지에토처럼 저절로 눈감고 깊은 심연에서 끄집어내는 사랑이 나에게 말하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6악장의 오보에 소리는 애끊는 슬픔처럼 들리고 조심조심 연주하는 현악기 소리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고요하고 잔잔한 소리가 객석을 압도합니다. 하늘 높이 외치는 호른의 간절한 절규. 자연에서 시작한 화려하고 웅장하고 혼란스럽고 장대한 음들은 결국 신의 사랑에 귀결되어 신은 우리에게 오로지 사랑하라고, 사랑뿐이라고 속삭여주는 듯합니다.

아~ 이 선율을 직접 듣는 기분.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지극한 아름다움에 휩싸인 전율의 순간. 넓은 대양으로 큰 배를 타고 나가는듯한 웅장한 고요 속에 몰입합니다. 온 몸으로 지휘하고 온 몸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마음을 뒤흔드는 팀파니 소리. 온 몸으로 터뜨리는 인선희 씨의 심벌즈 소리. 영원히 잡아두고 싶은 아름다운 선율은 끝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토록 크게 내뿜던 금관악기들도 잔뜩 긴장한 소리들을 조심스럽게 내고 꼭 누른 손끝에서 나오는 현악기 소리들. 아름다움은 음악으로 변화되어 듣는 우리들을 가장 높은 곳으로 이끕니다. 이때를 기다린 소리의 최 정점. 팀파니 소리에 모든 소리는 하나 되고 끝을 맺습니다. 오늘 연주의 최고 연주자는 단연코 트럼본입니다. 연주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를 보냅니다. 잘 했다고 고맙다고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무대를 향해 박수를 보냅니다. 연주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이렇게 한 마음으로 뿌듯할 수 있을까요. 음악으로 하나 되고 위로받고 높은 곳으로 고양시키는 이 행복감. 함께 감동한 사람들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