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콘서트를 찾아 만사 제치고 대전예당 앙상블 홀을 찾은 이유가 있다. 첫째 선곡(選曲). 베토벤 7중주 내림마장조 작품20(1), 헤르만의 3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카프리치오 작품 2(2)와 멘델스존의 현악8중주 내림마장조 작품 20(3). 멜로디는 귀에 익어도 한 공연장에서 만나기 힘든 곡들이요, 세 곡에 붙은 7·3·8이라는 숫자가, 이제 막 시행된 소위 김영란 법의 3·5·10과 오버랩 되어 묘한 끌림이 있었다.

둘째 객원 리더 겸 바이올리니스트로 새로 초청된 그웬돌린 마신(Gwendolyn Masin)이다. 이름부터 고전적인 울림이 오고, 쟁쟁한 김필균씨와 자리를 나란히 하게 된 갈색머리 바이올리니스트(홍보전단에서 본)의 연주 실력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첫 곡은(1) 30세의 베토벤이 대가의 반열에 들면서, 갓 만난 비엔나 시민들에게 어필하기 위하여 쓴 ‘오락적인’곡이라는 소개처럼, 마치 마약에 취하듯 금방 몰입이 되는 매력적인 곡이다. 악성(樂聖)의 상표와 같은 예측 가능하고 질서 있으며 귀에도 즐거운(Predictable, Orderly & Pleasing) 선율과 리듬이 가득하다. 1악장 시작부터 4·3조의 운율에 몸이 저절로 들썩이며 빨려 들어간다. 무대로부터 좌측에 키순서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일렬로 서고, 우측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의 세 목관악기가 마주보고 있다. 문득 네 현악기를 차례로 넣으면 차곡차곡 들어가지 않을까 엉뚱한 상상을 하는데, 호흡 또한 러시아인형 마트료스카처럼 기분 좋게 들어맞는다. 금관과 목관의 중매쟁이 호른이 조금 튀면서, 세 악기가 화해하여 화음을 이루기까지 몇 분이 걸렸다. 앙상블 홀의 현 소리는 항상 날카로운 느낌인데, 까다로운 사감선생처럼 찡그렸던 그웬돌린의 표정과 선율이, 목관파트가 안정되자 비로소 따뜻하게 풀린다. 가장 깊은 중앙에 위치한 베이스는, 영화 벤허에서 역군(노 젓는 병사)들을 다그치던 고수(鼓手)처럼, 나직하고 위엄 있는 리듬으로 중심을 잡는다. 젊은 베토벤과 7중주(Septet)의 성격을 제대로 살려, 고전음악은 한 번쯤 반드시 현장에서 감상해야하는 이유를 확실히 보여준 45분간의 연주였다.

현악8중주는 4중주 2개 팀이 거울처럼(Mirror-image) 마주 선 배치로, 7중주와 마찬가지로 극적인 미장센의 시각효과와 음향이 어우러진 곡이다. 한 악단이 두 번 연주하여 합성녹음하기도 한다(Emerson 4중주단). 멘델스존은 잘생긴 용모·천재적 재능에 금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행복한(Felix) 작곡가였다. 그가 16세에 창안하고 작곡하여 천재성을 인정받고,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곡이 바로 2부의(3) 8중주(Octet)다. 바이올린 1, 2 다음에 비올라 첼로가 일렬로 선 현악4중주 두 팀이 마주보는 모습은 불꽃 튀는 대결(Duel)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팀의 선율과 상대 팀의 반주 또는 보잉과 피치카토가 어울려 서로 대화(Dialogue)하면서, 마치 오케스트라를 닮은 사운드를 만드는데, 여덟 연주자의 개성 또한 모두 살아 숨 쉰다. 전반의 7중주와 함께 이 음악회의 화두인 ‘아름다운 소통(美疏)’의 콘서트를 완성하고 있다.

오늘날 가장 긴박한 화두로 떠오른 소통(Communication)의 외침을 두 세기 전 천재작곡가들의 음악으로 듣다니... 베토벤과 멘델스존의 천재성 및 작곡의도를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 낸 정상급 연주자들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앙코르는 할브로센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파사칼리아. (1)과 (3)에서 두 아마조네스(그웬돌린과 첼로 수석 이송희)의 당당한 체구에 가려져(?) 문자 그대로 잘 보이지 않던 비올라의 이기석씨를 위한 그웬돌린의 배려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에 픽, 웃음이 난다. 기숙사 규칙 같은 틀에서 벗어나 마음껏 기량을 발휘한 두 비르투오소의 솜씨는, 거의 10분간 관객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후반 첫 곡으로 세 바이얼리니스트(신민경 안지현 전성분)가 연주한 헤르만 카프리치오는(2), 이 피날레를 위한 서막이었던가? 세 보면대의 악보 크기가 다 다른 것은 착각인가, 아니면 명인 급 연주에 어울리게 꾸민 연출인가? 현란한 8분의 카프리치오는 분명히 암보(暗譜)연주였으니까. 앙코르를 포함하여 네 곡을 들으면서, 고전음악(Classical Music)은 실내악(Chamber Music)으로 시작하여 실내악으로 끝난다는 명언을 다시 한 번 실감한 연주회였다.

2016. 10. 10. 임 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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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챔버시리즈에 대한 정성스러운 후기를 이메일로 보내주셨습니다. 

   임철중님의 관심과 응원에 감사드리며,

   더욱 발전하는 교향악단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